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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에세이]"딛는 글" 기간 당 내가 글을 써내는 양을 그래프로 만든다면 상 하향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습일 거다. 어느 시점부터 어느 시점까지는 높은 경사도의 상승세를 보이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점차 하향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이내 0으로 수렴한다. 이 글은 0에 수렴하기 시작한 그래프의 추락을 인지했을 때 쓰게 되는 글이다. 이전에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다짐, 동기부여 등등의 이유를 붙여 유사한 글들을 썼었다.​그 글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글을 쓰고 나면 어느새 다시 슬그머니 하고 그래프가 고개를 들었다. 물론 지금 쓰는 이 글이 이전의 글들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펜을 굴려본다. 글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자문해보자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대답이 나온다. 다른 즐거움에 대한 충동, 새로운 환..
[내무반에세이]"시선이 가는 곳에" 창밖을 본다. 혹여 들어올 먼지나 벌레를 막기 위해 방충망이 빈틈을 막고 있다. 방충망 너머에는 나무가 있고, 사람이 있고 하늘이 있다. 방충망보다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 회색빛 격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공간과 다른 곳의 공기를 마시고, 소리를 듣고, 빛을 받았다. 기분 좋은 감각들이 몸을 둘렀다.​그러다 문득,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생각했다. 두 다리가 붙어있는 바닥과 머리 위에 있는 천장, 사방을 둘러싼 벽들. 나는 안에 있었다. 내가 취했던 것들은 바깥의 것들이었다. 조금은 텁텁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갑갑함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 있는 건 파란 하늘도, 녹색 나무도 아니었다. 회색 창살이었다.​내 눈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고개를 흔들..
[내무반에세이]"누군가의 사회" 소설을 읽는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리고 그들의 사회가 담겨있다. 누군가가 그려낸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레 몰입한다. 공감한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임에도 자그마한 조각들이 익숙해서 더 눈을 크게 뜬다. 소설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은 내가 사는 여기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들 같다. 작가는 한 명인데, 마치 여러 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탁월함도 있지만 소설이 우리 사회를 담고 있다는 점도 큰 이유다.​소설은 사회를 담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설은 작가가 살고 있는 사회를 담고 있다. 가상의 인물과 가상의 공간에 그들의 경험이 녹아들어 그럴싸한 사회가 된다. 그래서 소설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흥미를 느낀다. 어쩌면 ..
[내무반에세이]"약자" 약자가 되었다는 기분.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곳에 속한 나는 최하 계급을 담당하였고, 누구나 나를 그렇게 보았다. 젊은 남성, 건강한 신체, 준수한 가정 형편, 평균 이상의 학벌. 사실상 이전에 속했던 사회에서 나는 약자가 아니었다. 위에 나열한 것들 따위로 약자와 강자를 나누는 치졸한 행위는 경멸했지만, 적어도 지금 느끼는 바 그때의 나는 꽤나 강자의 축에 가까웠던 거 같다. 사회가 만든 위계 속에서는 저런 것들로 힘의 차이가 결정되었으니.​표면적이든 내면적이든 누군가는 그런 것들로 집단의 최하층을 담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위치하게 된 나는 괴리를 느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구나 우리를 하대할 수 있었고, 소리치고 통제할 수 있었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받고 끊임..
[내무반에세이]"손 아래 바닥" 바닥과 바닥이 겹쳐 보이는 순간. 회색빛 까슬한 바닥 위에 붉은빛 울퉁한 바닥이 오른다. 같은 듯 다르다. 붉은 바닥에는 옅은 능선들이 빽빽하다. 희게 변할 듯한 붉은색. 순탄치 만은 않았는지 이곳저곳 불거진 부분이 도드라 보인다. 거친 면은 주름져 있고, 작은 흉터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수히 많은 것들을 지어낸 손이다. 항상 밑에 깔려 무수한 것들과 접촉한 바닥이다. 꽤나 깊은 바닥이었다.​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알갱이들과 발자국이 난잡하게 뿌려진 회색 바닥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다리를 곧게 지탱하고, 또 다른 침묵하는 것들도 가만히 서있다. 그런 바닥이다. 수많은 것들이 지어지고 무너지는, 정착하고 떠나는 바닥이다. 회색 낯빛은 창백했고, 조금은 지쳐 보였다. 언제나 창조와 파괴에는 고통이 잇..
[내무반에세이]"되는 일" 왠지 될 거 같은 감이 있다. 해야 하는 일을, 할 일을 앞두고 섰을 때 문득 좋은 예감이 든다. 그럴 때면 막연한 기대감에 휩싸인다. 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된 것처럼 심장이 뛴다. 그런 감정과 그런 기대를 한껏 안고 일을 저지르면 거짓말처럼 이기거나, 되거나, 성공한다. 10초가량의 앞을 내다보는 예지 능력이라도 있는 양 예감이 들어맞을 때면 괜히 배로 기분이 좋다.​한 번 인지하기 시작한, 이 능력은 더 많이 더 자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일 하나까지 오늘, 아니 지금은 왠지 멋진 글이 나올 거 같아라는 기분과 함께 막힘없이 한 편의 글을 써 내려가기도 하고, 이거 붙을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면 그날의 시험에서는 좋은 결과가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이런 예상이 찾아오지 않은 경우에는 너..
[내무반에세이]"나무와 다르게" 첩첩 능선마다 짙은 초록의 나무들이 빽빽하다. 상록이 소나무보다 겨울이 되면 이파리를 떨구는 나무가 더 많은 산을 빼고는 조금의 틈도 없이 초록으로 가득 차있다. 새로운 나무가 자라날 자리마저 없어 보인다. 이미 줄기를 굵게 만든 기성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새싹은 자라날 힘이 없다. 생장에 한계가 없는 나무이므로 인재나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그들은 계속 두껍고 높아진다. 그리고 더욱 깊게 뿌리를 내린다.​묵묵히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그들이 미워졌다. 우리와 닮아서. 포화 상태의 시장에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한없이 높아지기만 하는 그들과 닮아서. 그래서 미워졌다. 끝없이 자라나는 나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의 성장이 작은 것들의 양분 흡수를 방해한다는 점까지. 그럼에도 맘 편히 비난할 수가 없다. 굵은..
[내무반에세이]"재능" 재능. 누구나 가지고 싶어 하는 것. 대개 재능이라고 하면 천부적이고 특별한 무언가를 떠올린다. 절대음감, 지치지 않는 체력, 빠른 연사력처럼. 누구나 선망하지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너의 재능은 뭐야? 어떤 집단에 소속되거나 새로운 이들을 만나면 우리는 자연스레 이 질문과 마주한다. 서류에 비어있는 특기 란, 자기소개서, 혹은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그리곤 고민에 잠긴다. 내 재능은 무엇인가.​어려운 질문이다. 선뜻 적어내지 못한다. 특기나 재능은 실로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으니. 재능은 특별한 누군가들의 전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특출난 무언가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다. 어릴 적부터 나는 취미, 특기 란에 무언갈 적어야 할 때면 깊은 고민에 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