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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에세이]"부러움의 끝에서" 많은 글을 읽는다. 감탄한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생각들과 단어들에 감탄한다. 그들이 풀어내는 특별한 경험. 그 경험에 담긴 매력 있는 문장들을 보여 부러워한다. 나는 왜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가. 나는 왜 저런 경험들을 겪어보지 못했는가. 특별한 글은 특별한 인생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그렇게 살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나를 책망한다. 그리고 조금은 좌절한다. 어떻게 글을 써야 그들 같은 글을 써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생각에 힘이 풀렸다.​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은 글을 읽었다. 그들이 어떤 단어를 사용해서 어떤 문장을 구사하는지 보고 흉내를 내본다. 어색함이 묻어나, 글을 완성할 수 없었다. 더 많은 글을 읽었다. 그들이 겪은 일들을 상상하며 그 경험을, 그 감정을 느껴..
[내무반에세이]"인간적" 인간적이다. 인간미 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어떤 흠을 보였을 때, 주로 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털털한 사람, 실수가 잦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반대되는 말로 기계 같다 정도의 말이 있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까. 결함이나 불완전함, 흠 따위의 것들이 아닌가. 결국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뜻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우리는 기적적으로 하는 일이 다 잘 풀리고 모든 일이 뜻대로 흘러가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가진다 한들 완벽하게 행복하지도, 완벽하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어딘가 부족하다. 몸속에 피가 흐르고, 연한 피부를 갖고, 나이를 먹고, 감정을 느끼기에 인간은 인간적이다. 그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고, 싸우고, 토라지며 관..
[내무반에세이]"왜 글을" 글을 쓰려면, 먼저 생각이 있어야 하고 목적이 있어야 하고, 옮겨 적을 매개와 문자가 있어야 하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고, 계획과 실천도 따라와야 한다. 사람에 따라 더 많은 것이 필요하기도 하고, 더 적은 것이 필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실은 무언가가 소모된다는 것이다. 불가피한 글쓰기 외에도 많은 이들은 자의에 의해 글을 쓴다. 나도 글을 쓴다.​글에 관심을 갖다 보니, 글에 대한 글을 많이 쓰곤 했다. 글의 의미, 글로 인한 성취, 글의 힘, 글의 매력. 그렇게 도달한 원초적인 질문은 '나는 왜 글을 쓰는가'였다. 전에도 이에 대한 해답을 어딘가 끄적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시 적는다. 더 명확하게 각인하기 위해서다.​글의 목적이라 하면, 기록 성취, 자기계발, 표현 ..
[내무반에세이]"목적지에 대해" 걸었다. 어깻죽지 위에서는 묵직한 짐 꾸러미가 발바닥의 마찰을 더했다. 앞에는 볼을 애며 지나는 바람이 우릴 가로막았다. 오르막, 내리막을 전전하며 이백의 우리는 걸었다. 쟁하게 내리던 빛줄기는 어느새 구름에 몸을 감췄고, 뿌연 하늘에 짙은 구름 만이 둥실거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토해낼 거 같던 대기는 연거푸 한숨만 쉬어댔다.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차가운 한숨을 걷어내며 걸었다.​바닥에 깔린 자갈도, 흙도, 때때로 밟히는 검은 아스팔트마저 처음 뵈는 것들이었다. 어느 날부터 하늘과 땅은 쳐다도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러나 목적지도 없는 무수한 발걸음들은 결국 고개를 떨구거나 높게 치켜들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가 자락에서 그렇게 걸었다.​하늘은 비었고, 땅은 과묵했다. 검은 어둠 속에서 빨라지..
[내무반에세이]"인지" 형광등에 흐르던 전류가 멈추고 빛을 잃은 자리에 누웠다. 벽에서 들어오는 시린 기운을 피해 이불을 둘러냈다. 눈을 감고, 하루 중 부끄러움과 뿌듯함 거기서 파생된 무수의 생각들을 억누르며 잠을 청했다. 점점 사고의 흐름이 느려지고, 점점 의식을 놓아가는데 얼굴에 붙은 두 개의 구가 느껴졌다. 온종일 빛을 받아 머릿속에 색을 넣어주던 구 한 쌍은 얇은 가림막 아래서 뒤척이기 시작했다.​잠들기 직전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쇄 반응으로 혀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침을 삼켜야 하는지, 폐 속에 공기를 계속 집어넣는 것마저 신경이 쓰였다. 이미 졸린 기운은 멀리 달아났다.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것들이었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나서는 잠에 들지 ..
[내무반에세이]"배우들의 사회"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연극과 같다"-어빙 고프면 [자아 연출의 사회학]-​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어떤 역할을 부여받는다. 누군가의 자식, 어떤 부부의 아이, 어떻게 생긴 아기, 그 첫인상과 더불어 앞으로 해나가야 할 배역의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이 정해진다. '기대'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 물론 처음 부여받는 배역은 자신에게 '기대'를 보내는 사람들 즉,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변형되고 달라진다.​우리는 그 기대들과 관중들의 반응을 통해 배역을 완벽히 수행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어느 조직에서 착하고 유능하다는 역할에 당첨된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기를 은연중에 강요받는 것처럼. 그 강요에 의해 연기를 하면 결과적으로 그 배역에 걸리는 기대가 늘어나 연기 분량..
[내무반에세이]"찻잔 속의 태풍" 아파하는 사람들의 비명과 울분이 들린다. 저 먼바다 어딘가에서 시작된 작은 바람이 몸집을 키우듯. 그 외침들이 모여 우리나라에 상륙하고 있다. 멀고 먼 곳을 돌아 겨우 도착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자 누군가는 이름을 붙이고, 누군가는 욕을 하고, 누군가는 문을 닫고, 누군가의 누군가 들만 태풍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 누군가만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다.​우리는 태풍 속에 살고 있다. 자유로운 나비의 날갯짓에 작은 '바람'들이 모여 거대한 태풍을 만들었다. 몰아치는 바람에 검은 비구름도 앞장서 동참했다. 그동안 무심코 버렸던 쓰레기들이, 장난으로 치부했던 웃음들이. 무감각한 도덕들이 강한 상승기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불어올 바람이었을 것이다. 천천히 지구를 잠식하는..
[내무반에세이]"도피" 꿈이 선명하다. 밤새 뇌리를 스친 몇 초의 생각들이 마치 오랜 시간처럼 빛을 발했다. 현실의 딱딱함이 허리로 전해지고, 차가운 공기가 코 끝에 서려도 그 빛을 떠올린다. 찰나의 기억들을 더듬어 다시 풀어낸다. 언어 차원의 것이 아니었지만 떠올리고 생각하고, 그려내 문자로 정리한다. 꿈을 기억한다. 검은 안개로 뿌옇기만 했던 망상의 가시화는 갈수록 맑아졌다. 때론 눈을 뜬 세상보다 더 살아있음을 느낀다.​꿈은 우리 안에 박힌 수많은 기억과 상상의 파편들이 무작위로 뭉쳐진 덩어리다. 이 덩어리는 순식간에 다시 부서져 새롭게 뭉쳐진다. 그 연속의 과정으로 우리는 꿈을 꾼다. 게다가 이 과정은 단 몇 초 안에 일어나고 있다. 부조화 덩어리, 찰나의 시간. 꿈이 장시간 머릿속에 머문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