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0) 썸네일형 리스트형 [내무반에세이]"우리는 어떤 맥락에 살고 있습니까?" 누군가 물었다. "우리는 어떤 맥락에 살고 있습니까?"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맥락. 달리 말하면 상황, 흐름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야기엔 맥락이 있고 맥락을 파악해야 그 안에 작은 말들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맥락은 내가 처한 상황이고, 맥락을 이해해야 내가 직면한 일들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살고 있나.이야기의 제목은 군대지만, 그 안에 맥락들은 여러 개다. 식사하는 맥락, 복무 신조를 외워야 하는 맥락, 경례를 하는 맥락 등. 수없이 많은 맥락들이 쌓여 하나의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누군가는 다시 물었다."당신의 맥락은 누가 만들었습니까?"국가가 만든 군대가 지금의 내 맥락을 만들고 있다. 나는 수.. [내무반에세이]"다른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기존에 살던 사회에서 동떨어진 또 다른 사회. 새로운 법규, 예절, 행동, 인지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초행자는 어디서든 서툴기 마련이다. 준비를 철저하게 해도 길을 잃고, 어느 지점에서는 당황도 할 것이다. 그런 여행지를 넘어 새로운 사회에 들어온 순간에 덮쳐오는 혼란은 생각보다 더 컸다.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은 대부분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전부 처음 보는 것, 처음 듣는 것, 처음 해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질 수 있는 설렘보단 걱정이 더 크다. 그리고 무서웠다. 잘못을 용인 받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자랄 대로 자라버린 몸뚱이로 들어온 이곳에서의 실수나 잘못은 결코 귀엽게 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고 반복적인 훈련과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동안에 체득해야 했고, 기억해.. [에세이]"세포가 되었다." 우리의 몸은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다세포 생물이라고 한다. 모든 세포는 생명체의 일원으로서 생명의 지속을 위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새겨진 일들을 해나간다. 그러다 자칫 이상한 행동을 하는 세포나 제 기능을 못하는 세포는 이내 죽거나 다른 형태의 질환으로 변모한다. 수많은 세포들의 노고와 죽음으로 생명을 영위하던 다세포 생물 '나'는 이곳에 들어와 하나의 세포가 되었다.머리가 지시하는 데로 제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수행한다. 체계는 정확해야 하고, 세균 같은 존재는 백혈구가 나서 저지한다. 제 위치를 벗어나선 안되고, 이상행동을 해서도 안된다. 그저 내가 속한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묵묵히 시키는 행동을 한다. 수십억의 자율성을 희생시켜 .. [에세이] "기다리지 못했던 우리에게" 기다린다는 감정, 요즘의 사회에는 존재하기 힘든 감정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식당에 줄 서있는 사람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은 단어뿐인 기다림을 하고 있다. 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멈춘 후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기 마련이다.사람들은 기다림을 싫어한다. 싫어해왔다. 그래서 쉼 없이 눈과 입을 굴린다. 과거에는 신문의 형태로, 대화로,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시대를 통틀어 수면이라는 선택지도 있다. 나도 어딘가로 이동하는 기차 안이나 무언가를 기다릴 때면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날 업로드된 웹툰을 보기 시작했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SNS 글들을 읽었다.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바빠.. [에세이]모든 게 같아지는 순간 모두의 다름이 보였다 같은 머리를 한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같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같은 전달 사항을 받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침구를 깔고 같은 시간에 잠을 잔다. 개개인의 몸뚱이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획일화된다. 그런 우리는 모두 같아 보이게 행동한다. 그렇게 같아져만 간다.그러나 모든 것이 같아지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모두는 달라 보였다. 눈에 띄는 다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작은 다름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앉아있는 동안 누군가는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이리저리 눈을 굴렸고, 누군가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수첩을 꺼내 무언갈 끄적였고, 누군가는 자신의 옷을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서로가 달랐던, 달라 보였던 때는 그러한 다름보다는 누가 같은 옷을 입고, 같.. [단편소설]보상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찬 기운을 막아주는 두꺼운 유리창 안,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었다. 널찍하고 통풍이 잘 되는 집 구조 탓에 항상 추웠던 다른 날들과 달리 그날만은 유달리 따뜻했다. 기름값이 올라, 이를 절약하기 위해 설치했던 화목보일러 덕분이었을까. 하지만 그날 아버지는 보일러에 나무를 넣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시지 않았다. 그때 우웅- 하고 돌아가는 기름보일러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물었다."어쩐 일로 기름보일러를 다 틀었어?"그러자 아버지는 덤덤하게 말씀하셨다."보상이야."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 남매를 길러내시는 동안 해오신 지난 고생들의 보상이란 말인가. 화목 보일러와 전기장판으로 버텨가며 절약한 그간의 기름값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무엇이 되었든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보상..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