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0) 썸네일형 리스트형 [내무반에세이]"과거와 지금, 미래" 내가 썼던 글을 읽었다. 내가 이런 글을 썼었나? 낯선 감정과 생각들이 꽤나 보기 좋은 문장으로 담겨 있었다. 지금 나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데. 조금은 부끄러웠다. 모두가 나아가는 시기에 나는 다시 퇴화하고 있는 건가. 이 글을 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살아가다 한 번은 뒤를 돌아보며 찬란하게 남아있는 흔적들을 보며 그때로의 회귀를 말하곤 한다. 그때가 좋았지. 지금은 예전만 못하네.그 글을 쓸 당시와 지금의 나는 놓인 상황, 삶을 대하는 태도, 무엇 하나 같은 게 없다. 그때의 나는 어떤 길 위에 서있었나. 사방팔방으로 놓인 수천만 갈래의 갈림길 앞이었다. 어떤 길로 나아가던 계속해서 똑같은 갈림길을 만났을 것이다. 결코 정도라는 것은 없으며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도 없었다. 우리 모두가 다른 .. [내무반에세이]"눈을 보는 눈" 눈이 내렸다. 소리 없이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쌓인 눈은 발이 푹푹 빠질 정도가 되었다. 생활관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하얀 바닥에 하얀 나무를. 질척거리는 아스팔트 위의 눈에 익숙해뎠던 탓에 이곳에 눈은 조금 낯설었다.제각각의 발자욱조차 없는 새하얀 설경.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가벼이 쌓인 눈들은 무리를 이루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괜스레 졸린 눈을 비비며 가슴을 졸였다. 잠시 잊고 지냈던 낭만 따위의 것들이 피어올랐다. 조심히 뽀득거리며 눈 위에 발을 내딛는 상상을 한다. 각자의 이름을 써보며 만족스러워하는 상상을 해본다. 장난스러운 누군가가 던진 눈 뭉치에 한순간 눈싸움이 벌어지는 그런 상상들을 한다.방송이 울리고 우리는 줄을 지어 나았다. 각자의 눈 겨울을 상상하며 가벼운 발을 옮겼다. 눈을 보.. [내무반에세이]"서늘함으로 찬란함을" 난생 처음 만져 본 총구의 온도는 서늘했다. 강철의 차가움이 손 끝에 번지자 소름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 차가운 총구가 누군가에게 향하는 상상. 방아쇠를 당기자 화약의 폭발로 굉음과 함께 뜨겁게 달아오른 총구에서 금빛 총알이 튀어내와 그 사람의 몸 속 깊숙히 박히는 모습이 그려졌다. 흠칫 놀라 총구에 닿았던 손을 얼른 떼버렸다.지금 내가 여기서 배우는 것들은 쟉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그리고 적을 성공적으로 섬멸하는 방법이다. 소총을 다루고, 수류탄을 던지고, 힘을 기르고. 미래의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실상 생애 경험해보기는 힘들겠지만 전쟁이 나버렸을 때 내가 해야할 일은 이곳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적을 죽이는 것 아닐까. 나라를, 국민을, 단순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들을 지키기 위.. [내무반에세이]"겨우 풀" 아침 내 쌓인 눈이 녹고,짙은 분위기 속. 고개 숙인 너를 봤다.초록을 놓지 못한 채 눈바람을 맞은 너를.이파리로 내려 앉은 눈송이를 털어내지 못해서연한 너의 줄기로는 견뎌내기 힘들었을 테지.고맙다.고개가 꺾일 지언정 흙을 움켜 쥔뿌리만은 놓지 않아주어서너를 묶어놓은 뿌리였음에도스스로 흙을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겨우 내 누렇게 눈을 감은 잔디 사이에서초록빛 너를 봤다.겨우 안도의 한숨인지후회의 탄식인지를 뱉어내는너를 기억했다. [내무반에세이]"별빛 가득한 특별한 밤하늘" 여기는 유난히 별이 많다. 모두는 어두컴컴해진 밤하늘과 자잘하게 흩뿌려진 별무리에 눈을 반짝인다. 여기는 별이 진짜 많네. 낯선 풍경이었다. 인구 1000명도 안되는 작은 면 단위 안에 다 소수가 모인 마을의 하늘에는 항상 별빛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옛날보다 별이 안보여서 놀란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말씀, 맑은 날에는 검은 우주에 우윳빛 줄기가 쭉 뻗어 있었다는 이야기. 갈수록 별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는 그 분들의 모습은 별이 많다고 행복해하는 주변 친구들의 모습과는 제법 달라보였다.밤이 찾아오고 별이 뜨는 것이 당연한 시절든 지났다. 간간이 보이는 밤하늘의 빛이라고는 빠르게 이동하는 항공기 불빛 뿐인 오늘이 왔다. 우리에게 있어 별은 원체 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길거리 네온으로 우리가 수많은 .. [내무반에세이]"달린다는 것" 마른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 한걸음 뻗어냈다. 다리가 뭉쳐오고, 힘은 발바닥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부족해진 몸속 산소 탓에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그래도 달렸다. 점점 다가오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렸다. 힘들고 아프다는 느낌 위에는 알 수 없는 희열이 덧씌워졌다.달린다는 것은, 달리는 순간은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극에 달한 상태다. 달리기 이전에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피했으며, 무엇을 좇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도착해야 하는 하나의 목표만을 갈망하는 순간이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혹은 커다란 기대감에, 그리고 도망치기 위해. 모든 상황들은 서로 다르지만 그 속에 놓인 이들은 모두 달린다. 숨 가쁘게 앞을 향해 나아간다.헐떡이는 만큼 가까워오는 목적지를 기대할 수 있어.. [내무반에세이]"편지에 담긴 것들" 누구나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 안에 많은 것을 담게 된다. 평소 말로 잘 하지 못했던 것들. 더 깊은 내면의 감정 등등의 것들이다. 편지 안에는 말보다 메신저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담게 된다. 그 이유로는 비대면적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점. 실시간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 작성하는 데 오래 걸린다는 점과 같은 것들이 있겠지만, 애초에 편지를 쓰는 동기 자체가 특별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요즘의 내가 쓰고 있는 편지는 조금 다르다. 매일매일 편지를 쓰고 있고, 그 안에는 그 사람과 나의 자유로운 의사소통로가 단절된 상태기에 더 많은 것을 담게 된다. 자유를 품었던 시절에는 언제든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 있었고, 메신저를 주고받거나, SNS를 들여 보거나 전화를 하는 등, 언제나 오감으로 서로를 .. [내무반에세이]"모든 수단이 차단된 지금" 필요한 일이 아니면 펜을 잡고 글을 적지 않았던 우리. 키보드 자판이 있었고, 스마트폰 속 키 패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 편하고 더 빠른 수단이 있었던 우리. 그리고 마음속 감정을 표출할 창구가 많았던 우리가. 모든 수단을 상실해 버린 손아귀로 펜을 집어 들었다. 빛나는 화면이 아닌 거친 종잇장 위에 글자를 새겨 넣는다. 손글씨는 쓰는 자신의 모습에 어색함을 느끼며 글을 쓴다.인간은 기본적으로 창작과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있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 만들어 냈을 때 기쁨을 느끼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우리 모두 살아가며 수많은 방식으로 이러한 욕구들을 해소해 나간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으로 책을 보는 것으로, 시험에 합격하는 것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누군가는 수다를 ..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