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닥과 바닥이 겹쳐 보이는 순간. 회색빛 까슬한 바닥 위에 붉은빛 울퉁한 바닥이 오른다. 같은 듯 다르다. 붉은 바닥에는 옅은 능선들이 빽빽하다. 희게 변할 듯한 붉은색. 순탄치 만은 않았는지 이곳저곳 불거진 부분이 도드라 보인다. 거친 면은 주름져 있고, 작은 흉터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수히 많은 것들을 지어낸 손이다. 항상 밑에 깔려 무수한 것들과 접촉한 바닥이다. 꽤나 깊은 바닥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작은 알갱이들과 발자국이 난잡하게 뿌려진 회색 바닥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다리를 곧게 지탱하고, 또 다른 침묵하는 것들도 가만히 서있다. 그런 바닥이다. 수많은 것들이 지어지고 무너지는, 정착하고 떠나는 바닥이다. 회색 낯빛은 창백했고, 조금은 지쳐 보였다. 언제나 창조와 파괴에는 고통이 잇따르기 때문이니 그리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그렇게 만난 두 바닥은 어울렸다. 색이 다르고, 질감도 온도도 달랐지만 그 지침이 닮아 있었다. 만들어지고 셀 수 없는 것들이 거쳐간 바닥들임에 지쳤을 것이다. 자주, 꽤나 오래전부터 봐오던 광경이었는데 어쩐지 오늘은 달라 보였다. 북적 한 공간과 벤치, 그곳에 앉아 고개를 떨군다. 그리고 붉은 바닥을 펼쳐 내려본다. 한쪽 눈을 감는다. 거리 감각이 지워지고 붉은 바닥이 회색 바닥에 하나가 된다.
모든 바닥들은 그런 공통이 있다. 자신들의 위로 끊임없이 무언갈 세우는 일을, 자신들의 위로 무게를 더해 나가는 일을 한다. 그렇게 자신들은 한없이 낮아진다. 오늘 만난 두 바닥도 그러하다. 손바닥은 내가 사는 동안 해낼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 시멘트 바닥은 그 위로 지나갈 수많은 것들을 감내한다. 그 모습이, 참아내고 견뎌내는 모습들이 제법 믿음직했고, 무엇이든 맡겨도 될 거 같은 기대마저 들게 했다.
그 믿음은 용기가 되었다. 끝없이 쌓아나갈 용기. 지쳐 포기할 법도 한데,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더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수천수백 명의 발자국을, 그들의 무게를 견뎌 낸 손 아래 바닥처럼.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버텨낼 것이라 믿었고 다짐했다. 어제도, 오늘도 쉬지 않고 만들고 써내는 것을 했다. 내일도 그러할 거다.
어쩌면 더 거칠어지고, 저 지칠 것이다. 그러나 더 단단해질 것이 분명하다. 더 노련할 거고, 더 따뜻해질 것이다. 붉은 바닥은 그렇게 내 삶이라는 무거운 탑을 버텨낼 것이고, 더 높게 쌓아갈 것이다. 오늘 만난 두 바닥은 닮았고, 내 바닥은 그 바닥을 더욱 닮아갈 것이다. 어떤 것이 올라도 금 가지 않을 견고한 바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