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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에세이]"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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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가 되었다는 기분.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이곳에 속한 나는 최하 계급을 담당하였고, 누구나 나를 그렇게 보았다. 젊은 남성, 건강한 신체, 준수한 가정 형편, 평균 이상의 학벌. 사실상 이전에 속했던 사회에서 나는 약자가 아니었다. 위에 나열한 것들 따위로 약자와 강자를 나누는 치졸한 행위는 경멸했지만, 적어도 지금 느끼는 바 그때의 나는 꽤나 강자의 축에 가까웠던 거 같다. 사회가 만든 위계 속에서는 저런 것들로 힘의 차이가 결정되었으니.

표면적이든 내면적이든 누군가는 그런 것들로 집단의 최하층을 담당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위치하게 된 나는 괴리를 느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구나 우리를 하대할 수 있었고, 소리치고 통제할 수 있었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받고 끊임없이 눈치를 본다. 누군가는 우울하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포기한다. 자신들이 가져오던 힘의 정체감이 상실된 후 나타난 증상들이었다.

우리 모두는 몰랐다. 집단 내에서 약자로 존재하는 것이 어떤 정도의 무력감과 자괴감, 그리고 수치를 주는지. 우리는 성별, 나이, 직업, 재산 따위로 나눠지는 불문율 속에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우리는 합법적으로 사생활을 통제받고, 의견을 묵살당하는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뒤바뀐 위치 속에서 점점 녹아내려 침묵하는 전체가 되었다.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쏟아지는 하대와 무시가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 나눠진 계급에서 오는 박탈감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을 떠올렸다. 이곳이 아닌 곳. 그러니까 잠깐의 시간이 아니라 평생 이런 식의 위계 속에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그들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삶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이해가 됐다. 그들이 느꼈을 감정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바라볼 수는 있게 되었다. 가지고 있을 땐 몰랐던 그 고통을.

그리고 그들이 왜 발 벗고 나와 소리를 지르는지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상황 속에서 응어리지고 고통의 비명을 삼키고, 끝으로 괜찮은 척 썩히는 과정으로 생긴 뜨거운 것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시간이 지나 사리질 것이다. 나는 점점 올라갈 것이고, 그 자리에 서면 다시 눈을 감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지 못하는 거다. 보지 않는 거다.

그러나 적어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야겠다. 사회의 손바닥이 눈을 가려도 귀는 열어야지. 아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겠지. 지금 느끼는 뜨거운 것의 화기를 잊지 않고 기억해, 비슷한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사한 경험은 공감을 만들어내니까. 지금 내 안에는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있으니까. 이미 그런 경험들이 중금속처럼 몸에 축적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언젠가 내가 그들처럼 될 수 있는 곳에 살고 있다. 누구나 예외는 없다. 그렇기에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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