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썼던 글을 읽었다. 내가 이런 글을 썼었나? 낯선 감정과 생각들이 꽤나 보기 좋은 문장으로 담겨 있었다. 지금 나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데. 조금은 부끄러웠다. 모두가 나아가는 시기에 나는 다시 퇴화하고 있는 건가. 이 글을 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살아가다 한 번은 뒤를 돌아보며 찬란하게 남아있는 흔적들을 보며 그때로의 회귀를 말하곤 한다. 그때가 좋았지. 지금은 예전만 못하네.
그 글을 쓸 당시와 지금의 나는 놓인 상황, 삶을 대하는 태도, 무엇 하나 같은 게 없다. 그때의 나는 어떤 길 위에 서있었나. 사방팔방으로 놓인 수천만 갈래의 갈림길 앞이었다. 어떤 길로 나아가던 계속해서 똑같은 갈림길을 만났을 것이다. 결코 정도라는 것은 없으며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도 없었다. 우리 모두가 다른 탓이고, 모두의 인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퇴화했다는 자책감은 금세 사라졌다. 내가 끊임없이 발을 굴렸다고 자부한다면 그 방향이야 어찌 되었든 나아간 것이 아닌가. 우리 삶 속에 후진 기어는 없다. 설령 중립 상태에서 아무렇게나 굴러가거나, 굳게 밟은 브레이크로 멈춰있을지언정 후진은 없는 것이다. 분명 우리는 어딘가로 걷고 있고, 그 길은 나름의 정취가 있다. 다른 길을 걷고 싶으면 수천의 갈림길을 통해 가면 된다. 어디든 이어지지 않은 곳은 없으니.
인생은 평생의 과도기다. 오늘과 어제의 내가 다르고 1초 전의 나는 다른 존재다. 다양한 경험과 사건, 고민들이 빗발치는 우리 생에서 같은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다. 과거를 좇는다 한들 그 또한 지금에서의 새로운 변화가 아닌가. 지금 어디에 서있든, 책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되며, 이전의 무언가에 잡혀 걸어갈 힘을 잃어서도 안된다.
멈추지 않으면 결국 나아갈 거고, 멈춘다 한들, 시대의 흐름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우리를 다른 어딘가로 움직일 것이다. 어떤 완성도, 결말도 없다. 죽음마저 끊임없이 재평가되는 시대에서 뒷걸음질은 없다. 보다 나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고유의 가치와 의미가 존재하면 그것들은 단순 부등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과거의 자신이 어땠든지 간에 우리는 걸어왔고, 걷고 있고, 살아 있다. 엇나감을 걱정 말고 달려야겠다. 현재에 좋은 것들을 챙겨 매 순간 마주하는 갈림길을 달려야겠다. 뒤를 돌아보는 건 그 후에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