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하는 사람들의 비명과 울분이 들린다. 저 먼바다 어딘가에서 시작된 작은 바람이 몸집을 키우듯. 그 외침들이 모여 우리나라에 상륙하고 있다. 멀고 먼 곳을 돌아 겨우 도착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자 누군가는 이름을 붙이고, 누군가는 욕을 하고, 누군가는 문을 닫고, 누군가의 누군가 들만 태풍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 누군가만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다.
우리는 태풍 속에 살고 있다. 자유로운 나비의 날갯짓에 작은 '바람'들이 모여 거대한 태풍을 만들었다. 몰아치는 바람에 검은 비구름도 앞장서 동참했다. 그동안 무심코 버렸던 쓰레기들이, 장난으로 치부했던 웃음들이. 무감각한 도덕들이 강한 상승기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불어올 바람이었을 것이다. 천천히 지구를 잠식하는 우리가 같은 방법으로 그들을 무너뜨리고 있었으니까.
불어오는 동안 태풍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필코 제대로 난장을 쳐서 모두의 경각심을, 모두의 배려를, 모두의 존중을 끌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여기 존재하고 있었음을 맘껏 뽐내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것에 대한 설움을 토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매년 여름 우리나라를 스쳐가던 바람들이 아니다. 정확히 우리에게 직격한 이 바람을 더 이상 무시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왜 몰랐을까. 아니, 왜 모르고 싶었을까. 작은 바람과 분노가 뭉쳐 초속 몇십 미터의 강풍이 될 때까지 왜, 눈을 돌리고 입을 닫았을까.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살고 있던 세상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골치 아픈 걱정 따위는 하지 않겠노라는 회피, 그리고 누군가 해결할 테지라는 낙관. 결국 태풍이 되었다. 모두의 비명이, 모두의 아픔이, 모두의 외침이 한데 모여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강풍으로 몰아친다.
그러나 이 태풍을 바라보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찻잔 속의 태풍이다. 여느 때처럼 한가로이 티타임을 즐기려고 끓여낸 찻잔 안에서 운 나쁘게도 태풍이 분 것이다. 그 바람은 찻잔을 흔들어 내용물을 넘치게 했다. 그들은 말한다. 뭐야 재수 없게 옷에 묻었네. 그리곤 무심하게 입고 있던 셔츠를 빨래통에 던진다.
아파하는 사람들의 비명과 울분이 들린다. 저 먼바다 어딘가에서 시작된 작은 바람이 몸집을 키우듯. 그 외침들이 모여 우리나라에 상륙하고 있다. 멀고 먼 곳을 돌아 겨우 도착했다. 찻잔 속에 거센 바람이 불자, 누군가는 이름을 붙이고, 누군가는 욕을 하고, 누군가는 잔을 버렸다. 누군가의 누군가만이 태풍에 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