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물었다.
"우리는 어떤 맥락에 살고 있습니까?"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맥락. 달리 말하면 상황, 흐름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야기엔 맥락이 있고 맥락을 파악해야 그 안에 작은 말들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맥락은 내가 처한 상황이고, 맥락을 이해해야 내가 직면한 일들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살고 있나.
이야기의 제목은 군대지만, 그 안에 맥락들은 여러 개다. 식사하는 맥락, 복무 신조를 외워야 하는 맥락, 경례를 하는 맥락 등. 수없이 많은 맥락들이 쌓여 하나의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누군가는 다시 물었다.
"당신의 맥락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국가가 만든 군대가 지금의 내 맥락을 만들고 있다. 나는 수동적인 주인공으로 혹은 조연으로 그 맥락을 연기하고 있다. 그렇기에 무기력했다. 사람은 각 맥락에 따라 다르게 대우를 박도, 다르게 생동해야 한다. 그래서 맥락이 중요한 것이다. 같은 말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듯. 각 맥락에 적합한 존재가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곳이 만들어 놓은 맥락에 적합한 존재로 거듭나는 중이다.
그렇기에 더욱 무기력했다. 현재의 맥락을 나를 수동적으로 만들었고, 내가 원하는 바를 온전히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따랐다. 가면을 쓰고, 딱딱한 무도회에 참석해 발을 맞췄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해야 하는 일이고,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따위의 무력감에 고개를 숙였을 때 누군가는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의 맥락은 무엇입니까?"
고개를 들었다. 앞서 늘어놓았던 맥락들은 '내'것이 아니었다. 짜인 맥락에 발을 들였을 뿐이다. 머릿속 뇌피질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짜인 맥락의 공허함 무력감을 느끼는 동안 내가 한 거라고는 얼추 비슷한 가면을 눌러 쓴 것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맥락은 어떻게 찾을 수 있나. 자유롭지 못한 지금, 방법은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모두가 군대라는 제목의 이야기 속 주민이지만 각자가 만들어낸 최종 결과물은 모두 다를 터이다. 그럼 나는 그 이야기 안에 내 맥락을 끼워 넣어 '나'의 군대라는 이야기로 살을 붙어야 할 것이다. 하루에 얼마는 운동을, 글쓰기를, 독서를. 그렇게 내 맥락을 넣었을 때 비로소 공허함과 무력함을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다 앞을 봤을 때 누군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도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