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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에세이]"인지"

내무반 에세이 2025. 3. 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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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등에 흐르던 전류가 멈추고 빛을 잃은 자리에 누웠다. 벽에서 들어오는 시린 기운을 피해 이불을 둘러냈다. 눈을 감고, 하루 중 부끄러움과 뿌듯함 거기서 파생된 무수의 생각들을 억누르며 잠을 청했다. 점점 사고의 흐름이 느려지고, 점점 의식을 놓아가는데 얼굴에 붙은 두 개의 구가 느껴졌다. 온종일 빛을 받아 머릿속에 색을 넣어주던 구 한 쌍은 얇은 가림막 아래서 뒤척이기 시작했다.

잠들기 직전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쇄 반응으로 혀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침을 삼켜야 하는지, 폐 속에 공기를 계속 집어넣는 것마저 신경이 쓰였다. 이미 졸린 기운은 멀리 달아났다.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것들이었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나서는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불편했다. 마치 몸 이곳저곳에 거추장스러운 장식들을 마구잡이로 달아놓은 것처럼.

결국 또다시 잠에 들기 위해 꽤나 긴 시간을 허비했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인지함'을 통해 불편함을 얻곤 한다. 뜬금없이 숨쉬고, 침 삼키는 걸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처럼. 한 번이라도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은 이 불편함을 알 것이다. 무의식 영역의 것들을 의식하는 행위의 불편함을. 이것은 비단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만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많은 행위들을 한다. 때론 걷는 것, 서있는 것, 말하는 것 등등. 수많은 움직임들을 언제나 그랬듯 방치해왔다. 그리고 때때로 그 움직임들은 우리 인지 범위 밖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행위에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는 걸 의미하기에 가해자 없는 피해자들만 늘어갔다. 모순적인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지해야만 하는 시기에 놓였다. 본인이 하는 행동, 말들이 무엇이고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아야만 하는,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야만 하는 지금이다. 이전부터 그랬어야 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만 한다. 더 이상 말 못 하는 피해자들을 그래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 피해를 입을 불특정 다수를 보호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지'가 주는 불편함이 싫어 이를 외면해버리기도 한다. 원래 안다는 것은 불편해지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대부분은 불편함을 싫어하니까. 무의식의 행동들에 생각이 포함되고 자연스럽게 행해오던 것들을 통제당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본인은 그렇게 편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내 행복한대로 살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괜한 걸로 분위기 흩뜨리지 말라는 말들로 자신을 무장한다. 그 무장에 부딪히고 치이는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맞다. 개인의 편의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편의가 타인의 편의를 제한하면서 보장되는 것은 안될 말이다. 분명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인지하고 고려할 수록 불편해질 것이다. 발밑에 지나는 개미들을 피해서 걷는 것. 다리에 걸리는 풀들을 피하는 것. 주머니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쓰레기를 움켜쥐는 것들처럼.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되는 생명을 살리는 일, 굳이 파괴할 필요 없는 자연을 지키는 일, 굳이 더럽히지 않아도 되는 길을 깨끗이 하는 일. 그리고 굳이 상처 입히지 않아도 되는 이들을 놔두는 일. 필요한 일이다. 본인의 작은 불편함으로 더 많은 것들을 지켜낼 수 있다면 무릇 그래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잠시 불편하더라도 알아야 한다. 그 후에는 의식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픔들을 가해자 없는 피해자를 더 이상 낳지 않기 위해서다. 결국 그 의식이 평균이 되면, 체득된다면, 그래왔던 것처럼 무의식의 영역으로 다시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로소 옳은 방식의 편함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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