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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에세이]"인간적"

내무반 에세이 2025. 3. 1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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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이다. 인간미 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 어떤 흠을 보였을 때, 주로 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털털한 사람, 실수가 잦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반대되는 말로 기계 같다 정도의 말이 있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까. 결함이나 불완전함, 흠 따위의 것들이 아닌가. 결국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뜻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우리는 기적적으로 하는 일이 다 잘 풀리고 모든 일이 뜻대로 흘러가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가진다 한들 완벽하게 행복하지도, 완벽하게 행동하지도 않는다. 어딘가 부족하다. 몸속에 피가 흐르고, 연한 피부를 갖고, 나이를 먹고, 감정을 느끼기에 인간은 인간적이다. 그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고, 싸우고, 토라지며 관계의 단절을 선언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끌린다. 와비사비. 완벽하지 않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말이다. 모자람에서 오는 충족감을 느끼는 삶이라. 모자람을 탑재하고 태어난 무수한 인간들은 모두 모자라다. 기본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완벽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기에 많은 사회들 속에 사는 우리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 미의 기준도, 능력의 가치 분배도, 지식의 정도도 전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는 완벽을 추구한다. 추구하지만 도달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지쳤다., 각각의 사회에 속한 이들이 그 사회가 선보이는 완벽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했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인간적'이라는 굴복의 말이 탄생했다. 굴복과 합리화의 산물인 말이지만, 나는 요즘 들어 이 말이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의 안도가 아니라 새롭게 제시된 모델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모두 다르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그런 인간의 모습을 인정한 순간이다. 모두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한다는 뜻을 가질 수 있는 단어가 아닌가. 설령 사회에서 이 말에 비추는 조명이 이와 다를지라도 나는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완벽의 기준을 본인, 인간 안으로 옮겨 놓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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