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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에세이]"왜 글을"

내무반 에세이 2025. 3. 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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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려면, 먼저 생각이 있어야 하고 목적이 있어야 하고, 옮겨 적을 매개와 문자가 있어야 하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고, 계획과 실천도 따라와야 한다. 사람에 따라 더 많은 것이 필요하기도 하고, 더 적은 것이 필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실은 무언가가 소모된다는 것이다. 불가피한 글쓰기 외에도 많은 이들은 자의에 의해 글을 쓴다. 나도 글을 쓴다.

글에 관심을 갖다 보니, 글에 대한 글을 많이 쓰곤 했다. 글의 의미, 글로 인한 성취, 글의 힘, 글의 매력. 그렇게 도달한 원초적인 질문은 '나는 왜 글을 쓰는가'였다. 전에도 이에 대한 해답을 어딘가 끄적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시 적는다. 더 명확하게 각인하기 위해서다.

글의 목적이라 하면, 기록 성취, 자기계발, 표현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쓰기 전 평소 생활을 하며 번뜩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장에 거칠게 적어낼 때 드는 감정은 아까움이었다. 나는 줄곧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하늘에 대한, 오늘에 대한, 나무에 관한, 어쩌면 내가 만난 모든 것들에 대한.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비틀며 새로운 무언가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개중 대부분은 불필요한 메모리 정리를 위해 자체적으로 망각되었다. 그게 너무 아까웠다. 메모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내가 자유로워졌을 때부터였다. 정형화된 교육과 시험에서 동떨어져 또 다른 무언가를 꿈꾸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면 사라지는 꿈. 빠르게 흘러가는 주변 속에서 천천히 피어나는 생각. 계시처럼 번뜩 떠오르는 영감들. 어딘가 적어두지 않으면 없어질 거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적었다. 짤막하고 어질러진 문장들을, 단어들은 아무렇게 새겨냈다.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 한 번 흩뿌려 놓은 생각들은 다시 긁어모아져 하나의 글로 정리되었다. 휘발되어 사라질 뻔한 생각들이 굳게 땅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주위로는 그렇게 서있는 글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 여전히 아깝게 사라지는 것들도 있지만 거의 모두를 손에 쥐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글을 쓴다. 아까워서 글을 쓴다. 그리고 나누고 싶어서 글을 쓴다. 소멸의 문턱에서 회귀한 것들의 모양을 보여주고 싶어서 글을 쓴다. 그렇게 기억하고, 나누고, 남기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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