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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에세이]"모든 수단이 차단된 지금"

내무반 에세이 2025. 3. 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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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일이 아니면 펜을 잡고 글을 적지 않았던 우리. 키보드 자판이 있었고, 스마트폰 속 키 패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 편하고 더 빠른 수단이 있었던 우리. 그리고 마음속 감정을 표출할 창구가 많았던 우리가. 모든 수단을 상실해 버린 손아귀로 펜을 집어 들었다. 빛나는 화면이 아닌 거친 종잇장 위에 글자를 새겨 넣는다. 손글씨는 쓰는 자신의 모습에 어색함을 느끼며 글을 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창작과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있다.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 만들어 냈을 때 기쁨을 느끼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우리 모두 살아가며 수많은 방식으로 이러한 욕구들을 해소해 나간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으로 책을 보는 것으로, 시험에 합격하는 것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누군가는 수다를 떠는 것으로 춤을 추는 것으로. 각기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창작과 자아실현의 욕구를 해소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수단과 방법이 사라진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펜과 종이뿐이다. 표출되지 못한 감정들과 해소되지 못한 욕구에 지친 우리는 그렇게 펜을 집어 들었다. 편지 쓸 생각이 없다며 펜과 우표조차 챙겨오지 않았던 이들이 볼펜을 빌려 일기를 쓰고, 누군가에게 보낼 날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고, 언뜻 떠오르는 기억들을 글로 정리한다. 우리는 이전까지 다양하게 배출되던 감정들을 글 하나에 담아내고 있다. 편지 형식으로 혹은 에세이 형식으로.

제한된 상태에 이르러서야 글로써 모든 감정과 창작 자아실현 욕구를 풀어보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색해 했지다. 나도 그랬다. 펜과 노트를 꺼내 시험공부가 아닌 글을 쓰는 것이 얼마 만인가. 조금은 부끄러웠다.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 글자와 더 빨리 써내지 못해 조바심을 갖는 내 모습이. 버튼 하나면 마음에 드는 글꼴로 바꿀 수 있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글씨체는 너덜거린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시간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펜과 종이를 꺼낸다. 글씨가 삐뚤거려도 딱히 적을 말이 없어도. 생각한다. 이 시간 동안 어떤 글자를 적어낼지. 아무 말이나 적다가 가끔은 잉크를 아까워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전에 왜 글을 적어내지 않았었나. 서툰 글씨라도 옹기종기 모아놓았을 때 무엇보다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켜켜이 쌓여가는 글들에서는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음에도 왜 적어내지 않았을까. 갈수록, 갈수록 손으로 글을 적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글을 적기 위한 편리한 방법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다. 손수 써낸 글에서 오는 기쁨을, 보람을, 글을 쓰고 나면 손가락 한편에 묻어 있는 잉크 얼룩의 정겨움을. 모두 둘러앉아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던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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