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반에세이]"눈을 보는 눈"

눈이 내렸다. 소리 없이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쌓인 눈은 발이 푹푹 빠질 정도가 되었다. 생활관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하얀 바닥에 하얀 나무를. 질척거리는 아스팔트 위의 눈에 익숙해뎠던 탓에 이곳에 눈은 조금 낯설었다.
제각각의 발자욱조차 없는 새하얀 설경.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가벼이 쌓인 눈들은 무리를 이루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괜스레 졸린 눈을 비비며 가슴을 졸였다. 잠시 잊고 지냈던 낭만 따위의 것들이 피어올랐다. 조심히 뽀득거리며 눈 위에 발을 내딛는 상상을 한다. 각자의 이름을 써보며 만족스러워하는 상상을 해본다. 장난스러운 누군가가 던진 눈 뭉치에 한순간 눈싸움이 벌어지는 그런 상상들을 한다.
방송이 울리고 우리는 줄을 지어 나았다. 각자의 눈 겨울을 상상하며 가벼운 발을 옮겼다. 눈을 보는 우리들의 눈에는 어떠한 종류의 설렘들이 가득했다. 오와 열을 맞춰 선 우리 손아귀에는 눈삽과 너까레라고 불리는 도구들이 쥐어졌다. 아 이런 거였구나. 주위를 둘러싼 눈이 그 순간 쓰레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숱하게 들었던,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린다는 느낌이다.
하늘 위 수분 알갱이들이 결빙되어 무거워진 몸뚱이를 지상으로 떨구는 것. 눈을 구성하는 물질과 쌓인 장소는 그대로였지만 그 위에 서 있는 우리는 달라져 있었다. 너른 공터의 눈을 가장자리로 치워 쌓아 올려야 했고, 새로 내리는 눈들이 다시 층을 이루면 제자리로 돌아가 바닥을 긁어야 했다. 창밖의 눈과 지금 발밑에 눈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 눈을 보는 우리의 눈은 지쳐있었다.
이런 관점의 변화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나타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사람의 어떤 행동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들거나, 내가 가질 땐 좋았던 물건을 남이 가졌을 때는 그 물건이 나빠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인식의 차이는 우리의 인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이 말인즉슨 우리가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주변 사물, 사람에 대한 인식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나쁘게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일 것이고, 좋게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긍정적으로 보인다는 시시콜콜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막상 이렇게 생각해보니 정말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당장이라도 몸소 실천해서 긍정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세상은 마음처럼 아른다운 곳도 아니었고, 당장 내 몸이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치는데 어떻게 어떤 것이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겠냐는 말이다.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이 좌우되는 것은 맞지만, 그 마음을 키우는 향분은 현실에서 난 것이겠다는 포기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눈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바꾼 것은 우리 안에서만 찾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에 허탈하기도 했지만, 눈을 치우며 소소히 장난치는 우리의 모습들도 다시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